비참

마녀 사냥 과 고문

밋있는 삶 2011. 5. 23. 22:15

1. 마녀 사냥

마녀 사냥은 1420년 부터 1670년까지 거의 전 유럽에 걸쳐 이루어졌다. 14세기경에 이르면 이전의 신성불가침의 사회조직이 변회하고 있음을 알리는 조짐이 이미 여러군데에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우박과 결빙 홍수 등 온갖 재해가 줄줄이 발생해서 수확된 작물들을 싹쓸어가버리는 바람에 끔찍한 기근이 시작되었다. 굶주린 늑대들이 시골집 주위에 배회했고 쥐들이 들끓었으며 페스트나 나병처럼 무서운 전염병도 온나라를 휩슬었다. 그렇다고 해서 신께서 이 엄청난 불행의 책임을 질 수 는 없는 노릇이었다. 의사들조차 이런 질병들이 너무 심각하고 눈깜짝할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볼때 도저히 자연적인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게다가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고해를 거부하는 가하면 단식일도 지키지 않고 종교행렬에 참가하는 숫자도 점점 더 줄어 들었으며 전통적인 기도를 올리고 성수를 뿌리는 대신에 마술로 병을 고치는 자들에게 몰려가는 것이었다. 사태는는 악화되고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졌으며 묵시록에서 예언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2. 마녀라는 증거

당시의 재판관들은 악마의 부하가 되었다는 최대의 증거는 악마의 집회(사바스)에 참가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마녀 재판의 최대 목표는 사바스에 참가했다는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종교재판이 열리던 시절에는 누가 보아도 확실한 흔적을 사탄이 새로운 추종자들에게 남겨 놓았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없이 마술을 부리는 여자들을 고발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날카로운 정의감을 지닌 사법관들은 때때로 다른 증거들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하였다.

 

[밀고]

15세기에는 혼자 외딴 곳에서 산다거나 혹은 어떤 동물을 특히 좋아한다는 것은 곧 그가 마녀이며 악마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증거로 간주 되었다.

 

[불완전한 묵주를 가지고 있을 경우]

어떤 사람의 묵주에서 알이 하나 이상 빠져있다면 그사람은 마녀일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묵주에 심자가가 달려있지 않다면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사도신경을 잘 모를 경우]

고발당한 여자들에게 사도신경을 암송해보라고 요구했는데 잘 모를 경우(특히 몇몇단어들을 발음하지 못하고 우물거릴때)에는 의심을 갖고 보았다.

 

[울지 않을 경우]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특징은 매우 확실한 증거로 간주 되었다. 왜냐하면 (여자들이란 원래 시도때도 없이 눈물을 쏟고 한숨을 내쉬는 인간들이다) 보뎅.(눈물이라는 것은 속죄자들이 그 들의 죄를 씻어내고 영혼을 깨끗이하는데 주로 쓰였기 때문이다) 보귀에. 그러나 이보다 더 명백한 증거는 마녀는 눈물을 흘릴때 오른쪽 눈에서만 딱 세방울이 흐른다고 해서였다.

 

[고문을 당했는데도 입을 꼭 다물고 있을 경우]

이 같은 침묵은 자신의 추종자들이 비밀을 누설하도록 사탄이 걸어놓은 묵비의 주문에 의한것이라고 간주 되었기 때문에 매우 부정적으로 해석되었다. 그들의 혀는 마비되고 성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세례를 받지 않은 어린아이의 간을 가루로 만든 다음 기장을 섞어서 만든 흑빵을 먹어도 이처럼 입이 굳게 닫혀버리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빵은 마녀 집외에서 사용되었다.

 

[보기보다 몸무게가 덜 나갈 경우]

마녀들은 하늘을 날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몸무게보다 너무 많이 나가지 않도록 마왕이 미리 손을 써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녀로 고바랑한 사람은 심명심판, 수장심판을 받아야만 했다.

 

3. 마녀를 고문하는 유형

 

[신명신판]

이것은 중세전기에 널리 유행하던 시험이었다. 먼저 사흘간 금식을 하고 그 다음에는 마녀라고 추정되는 여자의 유죄여부를 알려달라고 신에게 요청한다. 그런 다음에 고발당한 여자의 손에 새빨갚게 달구어진 쇠를 쥐어주고 쇠와 손을 함께 천으로 둘러싼다. 사흘뒤에 붕대를 풀었을때 화상을 전혀 입지 않았다면 그녀는 무죄다. 그 반대의 경우는 아예 그 여자를 통째로 불태워버렸다. 물이 펄펄 끓는 작은 솥안에 고발된 여자?l 팔을 집어 넣는것도 한 방법이었다.

 

[수장심판]

마녀는 몸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손발을 끈으로 묶어서 강물속에 집어넣는다고 해서 곧장 물속으로 가라앉지는 않는다. 만약 물속으로 곧장 가라앉을 경우 원친적으로는 다시 건저주게 되어있었지만 실제로 그러지 않았다.

 

[관통하기]

불에 달군 부지깽이나 막대기를 항문에 찔러넣고 마녀는 기름칠한 막대기 끝에 매달린 상태에서 결국 힘이 빠져 관통당하게 했다. 시체는 그대로 방치 하였다.

 

[교수형]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일부 관대한 재판장은 마녀에게 교수형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관중을 모으기 용이한 장소에서 집행되었다.

 

[장님 만들기]

눈을 하나 또는 두개 모두 뽑아 내었다.

 

[던젼]

반 또는 완전히 벗겨 세조각의 빵과 세모금의 썩은물로 연명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절대로 빛을 볼 수 없었으며 어떤 이들은 가슴 위에 나무 판자 또는 무거운 추를 올려 놓기도 하였다.

 

[랙]

심문할때 만든 틀로 도드래를 이용하여 마녀의 몸을 잡아 늘였다.

 

[목조르기]

끈으로 목을 졸라서 죽이는 처형방법 이었다.

 

[물고문]

말 그대로 물에 죄인을 계속 담그거나 머리 위로 계속 물을 쏟아 붇는 방법이었다.

 

[사지 찢기]

팔다리를 각각 다른 말에 묶은 다음 말을 채찍질하여 달리게 함으로써 사지를 찢겨 죽이는 방법이었다.

 

[쐐신 지지기]

다리와 발전체 또는 발만 덮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나무나 철로 도니 쐐기를 발의 특정 부위에 박아 넣으면서 심문하는 방법이었다.

 

[오금(힘줄) 자르기]

오금의 힘줄을 잘라 절름발이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이었다.

 

[우블리엣]

굉장히 좁은 구멍에 마녀를 가두는 것으로 여기에 갇힌 마녀는 제대로 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앉을수도 없었기에 불편한 자세로 고문을 견뎌야 했다.

 

[절단]

신체 부위를 절단하는 방법이었다.

 

[징벌의자]

처벌에 사용되는 의자로 이것에 묶여 마을의 광장에 놓이거나 마을에 끌려다닐뿐만 아니라 묶은 채로 물에 집어 넣기도 하는 방법이었다.

 

[차꼬]

족쇄달린 칼로 중앙에는 멀리가 들어가는 큰 구멍과 양쪽 끝에는 족쇄인 작은 구멍이 두개가 있는 형태로 마녀가 머리와 손을 구멍에 집어 넣고 잠구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필러리]

가축을 기둥에 묶는다는 뜻과 수갑과 쇠목걸이로 사람을 기둥에 묶는 방법이다.

 

[참수]

일반적으로 머리를 받침대나 돌덩이 위에 두고 도끼로 내리쳐 잘라내는 방법이다. 다른 방법은 무릎을 꿇게 하고 집행자가 목을 자르는 방법 잘린 머리는 창에 꼿아 일정시간 동안 공개 하였다.

 

[채찍질]

자백을 받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간단한 가죽채찍이나 유리 쇠가시로 만든 채찍도 있었다.

 

[화형]

유럽에서 마녀사냥을 할때 많이 사용한 방법으로 마녀를 불태우는 방벙이다.

 

[풀리]

종교 재판에서 사용된 방법으로 이 고문의 피해자는 머리 위로 손을 묶이고 발은 바닥 또는 형틀의 끝에 묶인채로 손에 묶인 끈 끝에 추를 도르래에 매달아 아래로 떨어 뜨려 팔과 다리의 관절을 빼내는 방법이었다.

 

[창자 들어내기]

정신이 또렷하게 살아있는 자에게 행해졌고 자신이 무엇을 당하고 있는지 알면서 당하게 하였다.

 

[목 매달고 창자 들어낸 후 4등분 하기]

죽기 직전 까지 목이 매달려 있으며 물론 기절하면 물을 뿌려 다시 깨운다. 창자를 빼내고 남은 시체를 4등분 하여 도시나 마을에서 떨어진 네 곳에 묻었다.

 

[마녀의 처형]

마녀들을 화형시키는 장면은 정말 큰 구경거리였다. 귀족들이 편안하게 처형장면을 구경할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칸막이 좌석을 설치하는 일도 있었다. 유죄선고를 받은 여자는 유황으로 색이 바랜 긴 옷을 입고 주교들이 쓰는 챙없는 모자를 썼는데 옷과 모자는 온통 악마 그림으로 장식되있었다. 그리고나서 그녀를 화형대로 끌고 갔는데 이 행렬은 마치 축제처럼 화려하고 떠들썩했다. 이날만 되면 술집은 발디딜틈도 없을정도로 바글거렸고 성화장수들도 단단히 한 몫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