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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실은 집창촌 건물입니다....2011.11.19.daum main기사 내용

밋있는 삶 2011. 11. 19. 09:22

[서울신문]"뭐, 나중에 자연스레 풀어지시긴 했는데 처음엔 미쳤다고 했죠." 혼자 서울 영등포 집창촌에 들어간다 했을 때 아버지는 당연히 펄쩍 뛰었단다. 뚫어야 할 관문은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업주들을 찾아다니며 매달렸다. "예술하는 사람인데 작품 하나 하고 싶다고 해서 네, 하고 문 열어 줄 리 없잖아요." 그렇게 애걸복걸해서 겨우 업주 단체 대표의 가게에 머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홍등, 붉은 불빛이 너울대는 1층 쇼윈도에서부터 뒤편에 마련된 수없이 많은 방들, 그리고 그 방으로 연결되는 계단까지. 이틀 동안 자 하나 들고 세부적인 곳까지 완벽하게 측정했다.

"그 장소가, 그곳 사람들이 무섭다거나 거부감이 든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집창촌의 집이 가진 공간과 시간성에만 집중했거든요." 측정한 자료를 가지고 스티로폼으로 2층집을 70% 크기의 모델로 만들고 다시 부순 뒤 폭발하는 이미지로 재구성했다.

●스티로폼 2층집의 폭발하는 이미지

여기에 '순간의 총체'(Sum in a point of time Ⅱ)라 이름 붙여 놓은 이는 서민정(39) 작가다. 70% 크기라 하지만 2층집이, 그것도 블록버스터 영화에서처럼 한번에 터져 나가는 모양새다 보니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빽빽하게 들어찬 스티로폼 덩어리와 만나게 된다.

처음엔 잘못 왔나 싶기도 하고, 그다음엔 어디로 가야 하나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러다 무너지려는 그 집 안으로 슬쩍 발을 들여놓으면 흔한 가정집에서 볼 수 있는 실내 풍경을 만난다. 일그러지고 깨지고 온통 하얗다는 것만 빼고. 감상하기 쉽도록 거리감을 두고 여백을 살려 전시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물론 의도적인 배치다.

"재현보다는 반전을 노려보고 싶었어요. 전작은 갤러리를 폭발시킨 거였는데 관객들이 요모조모 둘러볼 수 있게 자그맣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만드니까 장난감 같아서 압도적인 힘 같은 게 나오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전시장 생각 말고 작품 그 자체로 꽉꽉 채워보자 한 겁니다."

효과는 있다. 아기자기한 미니어처 같다기보다 초자연적인 느낌마저 살짝 난다. "선입관을 지워버리고도 싶었어요. 한번 둘러본 뒤 이게 집창촌 건물이었다는 얘길 들으면 '어? 그랬어?'라는 반응이 나오도록 하는 거죠."

왜 하필 집창촌 건물을 골랐을까. "의미의 확장"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자연의 시간에 맞춰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소멸돼 가잖아요. 그런데 폭발은 인위적인 소멸이에요. 찰나적 순간인 거죠. 그 순간을 한 장의 사진처럼 정밀하게 남겨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평범한 집으로 작업하면 '추억' '회상' 같은 것으로 키워드가 고정될 것만 같더군요. 누구나 대략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는 곳,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그 장소성만의 아우라가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거예요."

●"누구나 대략 알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는 곳"

그런 건물을 찾던 중 우연히 기회가 왔다. 지난 5월,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서 문래예술공장에 머물다 집창촌 여성들의 시위 현장을 목격했다. 곧 사라질 그곳에 주목했다.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 거점' 3곳 가운데 하나였으나 지금은 그 가운데 가장 낙후된 지역, 그러나 최근 들어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이 들어서면서 또 한번 개발 열기가 불어닥친 곳. "인위적 폭발의 순간, 저 공간에서 어떤 응축된 힘, 해방의 기운 같은 것이 터져나오는 게 아닐까 상상해 봤습니다."

일종의 제의(祭儀)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동판 작업하고도 비슷해요. 한 10년간 해보니 무슨 의식 같더라고요. 찍어내는 한 순간을 위해 무수한 시간을 들이는…. 폭발의 한 순간을 위해 이렇게 공을 들인 것처럼요."

작가는 홍익대 판화과를 거쳐 독일 슈투트가르트대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블랙의 마법에 빠져 동판 작업에만 10년을 바쳤지만 어느 순간 머리가 아닌 손이 기계적으로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설치작업으로 돌아섰다.

옆 전시장엔 영상물도 있다. 종이 위에 얇게 유약을 발라 만든 거대한 도자기 드레스가 있다. 무게만도 300㎏이다. 만드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이걸 몽둥이로 깨부수는 동영상이다.

"독일 전시 때예요. 갤러리 측이 약속을 깨고 작품을 운송해주지 않는 거예요. 그래? 그렇다면 내 작품 내 손으로 깨버리겠다, 한 거지요. 갤러리 측에서 기겁했지만 그냥 강행했습니다."

덩치가 자그마한 여성 홀로 집창촌에 쳐들어갈 배짱이 어디서 나왔는지 엿볼 수 있다. 12월 16일까지 서울 신사동 갤러리압생트. (02)548-7662.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